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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오래오래 좋아하기 위해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내일이나 내일 모레부터 출근하실 수 있으세요? 아침 일찍 카톡이 왔다. 하루라도 더 시간을 벌고 싶어 모레부터 출근하겠노라고 했다. 그리고 사자같은 머리라도 수습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에 미용실을 예약했다. 화이트 톤의 환한 미용실 의자에 앉으니 누렇게 뜨고 퉁퉁 부어버린 얼굴의 여자가 앉아 있었다. 미용실에서 곤욕스러운 것 중에 하나는 이렇게 큰 거울로 내 얼굴을 쳐다봐야 하는 것이다. 나는 서둘러 갖고 온 이 책을 펼쳤다. 미용실에 갈 때 마다 책을 한권씩 갖고 가곤 하는데 성공할 때도 있고 실패할 때도 있다. 이번에는 성공이다.책장을 넘길 때 마다 나는 내 마음 같은 문장에 격하게 공감하며 한 귀퉁이를 작게 접었다. 3번째 입사다. 3번이나 같은 회사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일까? 불행일까? 계약.. 더보기
[한국소설] 친애하고, 친애하는_백수린 그러다가 자기가 원했던 것같이 미모의 아내를 맞이하지도 못하고 어느 날 밤 돌진하는 음주 운전자의 차량에 들이받혀 죽어버린 L을 나도 모르게 떠올렸는데, 나는 L에게 딱히 큰 호감도 없었고, 그의 어떤 태도를 윤리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편이었지만, 무언가를 견디기 위해 애썼을지도 모르는 L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하자 한없이 서글픈 마음이 들었다. 아마도 그런 식의, 어쩔 도리가 없는 마음이 되어버린 것은 그즈음 내가 아무리 안간힘을 써도 엄마의 기대를 충족시키는 사람이 되지 못하리라는 것을 어렴풋이 예감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36p) 그렇지만 아이가 초등학생이 된 이후의 언젠가, 내가 일을 해보고 싶다고 말했을 때, 강이 "그럼 너는 우리 아이를 너처럼 외롭게 만들어도 .. 더보기
여행의 이유_김영하 남편은 공항에서 '여행의 이유'를 발견하고 이 책을 읽어보고 너를 좀 이해해 봐야겠다고 했다. 결혼하고 나서야 처음으로 해외 여행을 가 본 남편은 여행에 목메는 와이프 덕에 꽤 많은 곳을 여행했다. 여행을 가면 좋아하지만 한 번도 먼저 어딘가 가고 싶다는 얘길 한 적 없는 남편은 늘 어딘가 가고 싶어하는 나를 신기해했다. 남편은 진짜 여행하는 내내 이 책을 읽었고, 조금은 나를 이해할 수도 있겠다고 했다. 어? 나도 너한테 설명하지 못한 내 마음을 이 책이 설명해 줬단 말이야? 나는 여행에서 돌아 온 후, 이 책을 읽었다. 무릎을 치게 만든 문장들을 많이 만났다. 나 스스로도 가끔은 이해할 수 없는 여행에 대한 집착은 이런 것 때문이었나? 안타깝게도 이런 것이라면 앞으로도 크게 달라질 것 같지는 않다. .. 더보기
스토너_2018 올 해의 책 다른 해에 비해 올 해 (독서모임의 영향도 있고) 책을 좀 더 읽은 편이다. 한참 책만 읽었던 때와 비교한다면 여전히 참담한 수준이긴 하지만 그 때를 따라갈 순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런 나한테 스토너는 올 해의 책이다. 스토너를 처음 알게 된 건 '이동진의 빨간책방'에서 였다. 그때도 방송을 몇 번이나 찾아서 들을 정도로 좋아했고, 도서관에서 책도 빌려 왔었다. 그런데 엄청난 기대와 호감과 달리 초반 몇 장에서 도저히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그렇게 2주를 들고만 다니다가 도로 반납한 일이 있다. 그러다 스토너를 다시 읽게 된 건 골드 언니의 추천 때문이었다. 스토너를 처음 알게 된 이후로 시간이 한참이 흐른 후에나 나는 이 책을 본격적으로 읽게 됐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만나게 된 책이나 영화, 드라.. 더보기
메리제인요코하마 메리제인요코하마 황병승 메리제인. 우리는 요코하마에 가본 적 없지 누구보다 요코하마를 잘 알기 때문에 메리제인, 가슴은 어딨니 우리는 뱃속에서부터 블루스를 배웠고 누구보다 빨리 블루스를 익혔지 요코하마의 거지들처럼.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너는 걸었지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도시, 항구의 불빛이 너의 머리색을 다르게 바꾸어놓을 때까지 우리는 어느 해보다 자주 웃었고 누구보다 불행에 관한 한 열성적이었다고 메리제인, 말했지 빨고 만지고 핥아도 우리를 기억하는 건 우리겠니? 슬픔이 지나간 얼굴로 다른 사람들 다른 산책로 메리제인, 요코하마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