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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T R E E T

도대체 어떻게 살려고 그래?

"밖에 나가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물어봐. 너처럼 사는게 맞다고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있는지. 우리 상황을 생각해봐. 나는 이제 이렇게 사는거에 죄책감이 들어. 여행 좋지. 그런데 갔다 와서는? 그 다음에는 어떻게 살건데? 맞아. 너 말대로 다 살아지긴 했어. 그런데 어차피 반복 아니야? 뭐가 달라져?"

꾹 다물고 있던 그에게서 이런 말들이 튀어 나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놀라지는 않았다. 말하지 않아도 느낄 수 있었으니까. 다만 실제로 들으니 더 아팠을 뿐이다. 나는 말 문이 막혔다. 

그 말이 틀린 말은 아니었다. 나 또한 그 생각에 짖눌리고 있었다. 그래서 어느 순간 사람들에게 여행간다고 얘기하지 않았다. 어딜 가도 카톡은 되니까 외국에 있어도 한국에 있는 척 하는 건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더이상 여행은 자랑이 아니었다. 오히려 여행가는 걸 숨기기 급급했다. 누가 뭐라는 사람이 있는 것도 아닌데 변명부터 했다. 여행을 가는 이유는 가고 싶다는 것 하나 뿐인데 타인에게 말할 때는 처음에 없던 이유들이, 거짓 이유들이 생겼다. 나 스스로 떳떳하지 못한 것 같다는 생각은 진작부터 하고 있었다. 사람들이 대단하다고 하면 이제 그 말이 곱게 들리지 않았다. (주제에) 대단하다, (그 상황에) 대단하다, (그 나이에) 대단하다 는 말처럼 들렸다. 감탄도 칭찬도 걱정도 충고도 듣기 싫어서 입을 다물었다. 

언젠가부터 억지로 내가 제안한 여행을 따라 나서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 가자. 라고 입은 말했지만 마음은 전혀 따라오지 않는 듯 했다. 막상 가면 좋아하기도 했다. 하지만 뭔가 멍한 얼굴이 자주 보였다. 그래. 많이 다녔어. 이제 그만 다니자. 속으로 다짐한 적도 많았다. 하지만 시간이 허락되는데 그저 집에서 시간을 보내는 일이 너무 아까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가만 있지 못하고 '혹시 이번 기회에 여행가지 않을래?' 라고 입을 떼고 말았다.

나 스스로도 이해하기 힘들긴 했다. 도대체 나는 왜 이렇게 여행에 집착하는가? 그저 현실에서 도피하려는 생각때문일까? 예전에는 그 생각에 동의했다. 하지만 요즘은 집에 있는게 제일 편하다. 지금 상황이 나쁘지도 않다. 여행을 간다는 것은 80%는 고되고 10%는 감동이고 10%는 집이 제일 편하다는 것을 깨닫는 것 일 뿐이다. 준비하는 것도 만만치 않다. 신경써야 될 부분도 한 두가지가 아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오로지 스스로 해내야 한다. 그럼에도 굳이 얘길 꺼냈다 한 방 먹고 말았다. 

그리고 슬퍼졌다. 이 사람은 변했다. 연애와 결혼 초 우리 둘이 소중하다고 생각한 가치들이 이제 이 사람이 가진 순위에서 멀어지고 있었다. 현실적이라는게 뭔데? 그냥 우리가 살면 현실이 되는거 아냐? 라고 했던 사람이었는데 타인이 말하는 현실이 더 중요해지기 시작했다. 안정적인 직장, 통장에 쌓이는 어느 정도의 적금, 설계 가능한 미래같은 것들. 나는 여전히 꿈이니 자아니 뜬구름 잡는 소리만 해대고 있었고 틈만 나면 여행길에 올라서 우리 더 넓은 세상을 보자고 얘기했다.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 변해가는 것을 몰랐다면 말이 되지 않는다. 다만 그 사람 안에 예전에 내가 사랑했던 그 마음이 결국 중심에 있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었다. 

결국 나는 감정이 격해져서 눈물 바람에 아무 말이나 쏟아 냈다. 그럼 처음부터 단호하게 이번에는 가기 싫다고 하지, 꼭 기본적인 여행 준비(비행기티켓, 숙소, 기타 예약해야 될 것들)를 마치고 나서 이 사단이다. 나는 다 취소하겠다고 했다. 이런 마음으로 가봤자 웃으면서 다닐 수도 없다고. 그러고 보니 지금 이 상황 어딘가 익숙하다. 3년 전 유럽 여행을 가기 전에도 공항 주차장에서 이렇게 싸운 적이 있다. 긴 여행을 앞두고 왜 늘 이 모양이지? 방으로 들어 와 비행기 티켓과 숙소를 예약했던 사이트에 접속했다. 예약 취소 버튼이 눈 앞에 있었다. 저것만 누르면 이번 여행은 없던 게 된다. 저렇게 부담스럽다는데 안가는게 맞지. 싶은데 마우스를 잡은 손에 힘이 들어가지 않는다. 씩씩대며 취소 규정을 읽고 있는데 슬그머니 방문을 연다. 

취소했어? 미안해. 가자. 

됐어. 가지마.

아니야. 나도 가고 싶어. 그런데 가기 전엔 왜 이렇게 겁이 나고 불안하냐. 미안해. 취소하지말고 가자. 

부부가 처음부터 그래! 떠나는 거야! 하고 떠날 순 없는 걸까? 왜 매번 우리는 내가 제안하고, 설득하고, 남편이 반대하고, 내가 화내고, 남편이 사과하는 이 패턴으로 여행을 떠나는 걸까? 화는 여전히 풀리지 않았지만 이 와중에도 여행을 취소하고 싶지 않았다. 이 정도면 나도 심각하다 싶다. 결국 한바탕 난리 끝에 우리는 또 다시 여행길에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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