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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T R E E T

최후의 놀이동산


마지막 놀이동산이 5년쯤 전이었나보다. 에버랜드였다. 남들 다 가보고는 에버랜드를 이십대 후반에 처음 접하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그리고 두번째 방문했던 마지막 에버랜드도 참 좋았다. 늦은 저녁 퍼레이드가 시작되었는데 함께 앉아 있던 꼬마들과 있는 대로 손도 흔들었다. 밤이 되어 조명이 켜진 에버랜드가 너무 아름다워서 눈물도 찔끔 났다. 

의외로 놀이동산을 좋아하는 내가 오사카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늘 고민 끝에 제외한 이유는 사람에 치일까봐였다. 여행까지 와서 인파에 치이는 피곤함을 느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늘 도망치듯 오사카는 건너 뛰고 교토로 넘어 갔다. 이번에는 반대였다. 교토 카페 투어에 지친 이가 고즈넉한 것 말고 뭔가 신나는 것도 즐기자며 오사카 유니버셜을 제안했다. 여행은 늘 충동적인 것 투성이다. 남들은 유니버셜을 가기 위해 한국에서 티켓도 예매하고 뭐부터 탈지 계획까지 짜 오던데 우린 잠 자기 전에 결정하고 트렁크까지 그대로 끌고 유니버셜에 갔다. 

다행히 코인락커를 발견해서 짐을 넣고 가벼워진 몸으로 유니버셜 스튜디오를 향해 걸었다. 아주 맑진 않은 날씨 탓인가? 그냥 평일이기 때문일까? 생각보다 인파가 많지 않았다. 쉽게 입장하고 그 유명한 유니버셜 지구본 앞에서 사진도 찍었다. 급하게 더듬더듬 찾은 정보에서도 해리포터 존에 가서 포 비든 저니부터 타야 한다는 글을 읽어서 들어 가자마자 찾아 갔다.

역시 그 곳에 가장 사람이 많았다. 모든 시리즈를 챙겨 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해리포터 영화를 챙겨 봤는데 이렇게 잘 만들어진 해리포터 존이 어째서 낯설기만 한지 모르겠다. 호그와트 유니폼을 입고 해리포터 목도리를 목에 감은 사람들이 지팡이를 사려고 줄을 서 있고 버터 맥주를 마시려고 난리였다. 그 와중에 해알못인 우리 둘이 멍한 얼굴로 포 비든 저니 줄 끝을 찾아 섰다. 60분 대기 시간만 보이면 무조건 줄을 서야 된다고. 평소에는 3시간도 기다려야 된다고 어디서 주워 들은 얘길 하면서 기다렸다. 생각보다 줄이 빨리 줄어들었다. 

포비든 저니는 영상을 이용한 놀이기구였다. 결국 내가 탄 의자가 앞으로 뒤로 옆으로 흔들리는 것 뿐이라는 걸 알면서도 눈 앞에 펼쳐지는 영상 탓에 하늘을 나는 것도 같고, 밑으로 추락할 땐 이대로 떨어져 죽을 것만 같은 신기한 놀이기구였다. 1시간을 기다려서 2분 정도 낙하를 경험했다. 

쥬라기 파크 존에서는 나는 탈 수 있는게 없었다. 거꾸로 매달려서 타는 롤러 코스터는 아무리 생각해도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함께 간 이는 놀이기구라면 못 타는 것이 없었기에 들여 보냈다. 포 비든 저니를 타고 밍숭맹숭한 얼굴이던 친구는 플라잉 다이노소어를 타고 새로 태어난 듯 개운한 얼굴이 되어 나왔다. 심하게 짜릿했던 모양이다. 

발 길 닫는 대로 돌아다니면서 공연도 보고 놀이기구도 탔는데 이상하게 이 잘 만들어진 테마 파크에 설레임이나 낭만적인 기분이 들지 않았다. 에버랜드에서는 커다란 나무에 걸어 놓은 작은 전구들만 보고도 눈물이 찔끔 났던 내가 어째서 이 엄청난 테마 파크에도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건지 설레지 않아서 점점 우울해 졌다.  5년이나 시간이 지나서일까? 그건 아니야. 난 아직도 토이 스토리를 보고 또 보면서도 우는 걸. 내가 애니메이션을 얼마나 좋아하는데? 미니언즈도 얼마나 귀여워 하는데!

결국 해도 지기 전에 우리는 후퇴를 선언했다. 더이상 줄 서기는 그만하자며 나오기 전에 기념품 가게에 들러 해리포터 열쇠 고리를 하나 샀다. 걱정만큼 사람도 없었는데도 우리는 몇 년은 늙어버린 것 같이 너덜너덜한 몸을 끌며 유니버셜을 빠져 나왔다. 유니버셜 스튜디오 앞에 있던 편의점에서 달걀 샌드위치, 당고, 물 등을 사서 누가 뒤에서 쫓아 오는 사람들처럼 허겁 지겁 해치웠다. 그래도 우리 와 봤잖아. 와 봤으니 됐어. 의미없는 위로를 하고 최후의 놀이동산에 안녕을 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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