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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 T R E E T

2019.01.26~01.27 제주도


늘 가던 곳만 가고 6년째 한 숙소에서만 묵는다. 본격적으로 (?) 일본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는 제주도도 마음 먹고 갔는데 이제 제주는 잠깐의 여유가 생기면 휙 하고 떠날 수 있는 곳이 되었다. 지인이 있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처럼 느껴진다. 아무래도 마음이 복잡할 때, 스트레스가 심해지고 사람에 대한 감정이 복잡해질 때 지금 있는 이 곳만 아니라면 어디라도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고 이번에도 그런 마음으로 1박 2일 제주로 떠났다. 충동적인 여행인만큼 비행기 티켓도 평소라면 절대 가지 않을 금액을 지불해야 했지만 그러고 싶은 날이 있는 법이니까. 

제주에 내리자마자 날씨가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아주 춥지도 않고 햇빛은 적당히 따뜻했고 하늘은 요즘 구경 해 본 적 없을만큼 깨끗하고 쨍한 파란색이었다. 비행기에서 신기한 하늘을 구경했는데 구름이 너무 낮게 있었고 바다에 구름 그림자가 비췄다. 모빌을 걸어 놓은 것 마냥 동동 떠 있는 구름이 신기해서 비행기 처음 탄 사람마냥 사진을 찍었다. 여행을 떠날 때 새로운 것을 보고 경험하겠다고 마음 먹기도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익숙한 곳을 가고 늘 가던 곳을 가기 위해 여행을 떠나기도 한다. 눈에 익은 길을 달리면서 느껴지는 편안함도 있지만 그 안에서도 날씨에 따라 그 날의 내 기분에 따라 같은 하늘도, 바람도 다 다르게 느껴지는 건 새로운 곳을 가는 것 만큼이나 다른 경험이다. 

우리가 좋아하고 사랑하는 우진 해장국의 고사리 해장국을 첫번째 음식으로 골랐으나 이제 더이상 우진 해장국은 갈 수 없다는 걸 이번 여행을 통해 깨달았다. 점심시간이 한참 지난 시간이었음에도 식당 앞에는 줄이 길게 늘어 서 있었고 주차장은 차들로 빽빽했다. 줄 서서 먹을만큼 맛있는 해장국이지만 그건 아직 그 맛을 본 적 없는 초행자들에게 양보하기로 하고 우린 발길을 돌렸다. 하지만 다른 곳을 한참 달려 갈만큼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고 근처에 유명하다는 김밥집에서 김밥을 사와 차 안에서 첫 끼를 허겁지겁 해치웠다. 시장이 반찬이라 그런건지 아니면 이 김밥집이 정말 맛집인건지 너무 맛있게 먹었다. 제주 시내를 벗어나 한적한 도로를 달려 월정리 바닷가가 보이는 카페에 가서 커피도 한 잔 마셨다. 월정리는 쇠락한 왕년의 스타같은 모습이었다. 바다는 여전히 예뻤지만 그 외에는 몇 차례 바뀐 가게들이 어울리지않게 서 있을 뿐이었다. 

같이 간 이가 질색을 했지만 나는 또 소심한 책방에 가고 싶었다. 소심한 책방을 매 번 가는 이유는 갈 때 마다 책방은 그대로지만 책은 바뀌기 때문이다. 책도 많은 부분 그대로라고 해도 2번째 갔을 때 보이지 않던 책이 3번째 보이기도 하고 독립 출판 된 책들은 일반 서점에서 구경할 수 없는데 소심한 책방에서는 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번에도 나는 구석구석 돌아다니면 2권의 책을 고르고 1개의 스티커 모음 봉투를 구매했다. 다음에도 또 갈 것 같다. 

완전히 해가 지고 깜깜해 진 후에야 익숙한 그 숙소로 향할 수 있었다. 2014년 결혼한 두 분의 숙소에 매 년 묵었는데 문을 열고 들어갔을 때 하나의 생명이 태어나 세명이 되어 있는 모습은 말할 수 없는 뭉클함을 가져왔다. 결혼한 부부가 아이를 낳는 것이 이상할 것도 없고 신기할 것도 없지만 어디에선가 뿅하고 나타난 것 처럼 아기가 태어나 엄마에게 안겨있는 모습은 언제 봐도 신기했다. 아기는 사진으로 본 것 보다 훨씬 작았고 볼이 넘칠 듯 토실토실하고 눈이 동그랬다. 낯선 나에게도 쉽게 안겼고 울지 않았다. 안았을 때 제법 묵직했는데 그저 구름처럼 비현실적으로 느껴지던 아기가 어떤 무게감을 가지고 나에게 안겨 있을 때 나는 그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무게감이 너무 좋았다. 주변에 아기를 낳은 지인들이 많은데도 나는 늘 형식적인 인사를 건넸다. 아기라면 어떤 아기나 예쁘고 귀여웠지만 이상하게도 이 부부와 아기는 완성된 형태처럼 느껴질 만큼 아름답고 안정적이었다. 이제 백일 남짓 넘긴 아기를 돌보느라 피곤한 얼굴인 것이 당연할텐데도 부부는 여전히 사람 좋은 웃음, 내가 반한 그 웃음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고 아기를 바라보는 눈빛에는 사랑이 넘쳤다. 낯가림이 없고 순한 아기는 그 존재 자체로 자꾸 웃음이 터지게 만들었다. 

밤 9시가 넘어서 홍차를 가장한 맥주를 사이에 두고 짧고 강렬한 수다로 서로의 근황과 생각들을 나눴다. 1년에 한 두번 보는데도 어색하지 않고 늘 따뜻한 얘기들을 나눌 수 있는 이가 있어서 참 좋았다. 아침 해는 예고한 것 보다 일찍 떠서 해돋이는 보지 못했지만 익숙한 직사각형의 창을 통해 본 성산일출봉은 볼 때 마다 감격스러웠다. 신선한 당근 토스트를 먹고 부부와 짧은 인사를 나눴다. 자주 보지는 못 해도 또 볼 수 있으니까. 괜찮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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