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B O O K

이른 아메리카노

카페 도쿄
카테고리 여행/기행
지은이 임윤정 (황소자리, 2007년)
상세보기

아침에 바람이 부는 것이 너무 좋다. 여름을 제외한 모든 계절을 좋아한다. 그 중에서도 가장 좋은 날은 바람이 부는 날이다. 시원한 바람이 불면 뭐든, 상관없다는 기분이다. 아침에 바람이 불어서 오늘은 따뜻한 아메리카노를 먹어도 좋겠다고 생각했다. 점심 때 커피를 사기 위해 나왔는데, 밖에는 한 차례 소나기가 지나간 흔적이 남아 있었다. 아메리카노를 마시기에는 후덥지근한 기운이 가시진 않았지만 그래도 마음 먹은 대로 뜨거운 커피를 사가지고 사무실로 올라왔다.
그리고 커피를 마신 것 까진 좋았는데, 그 뒤로 식은땀이 나면서 점심 먹은 것이 꽉 얹혀버렸다. 까스 활명수와 소화제와 아메리카노가 범벅되어 있는 내 위장은 몇 시간동안 움직임을 멈춘 듯 더부룩했다.
잠시 쉬다 오라고 과장님께서 시간을 주셨다. 회사에서 이렇게 달게 잘 수 있다니. 잠을 자는데 내가 낯선 곳을 헤매고 있는 꿈을 꿨다.
낯선 곳을 헤매는데 내가 내 모습을 보고 있자니 아주 신이 났다. 발걸음도 가볍고, 입 꼬리는 계속 움찔거리는게 좋아 죽겠다는 표정이다. 30분 동안 그렇게 거리를 헤매다가 돌아 온 것은 엑셀 창이 켜진 사무실 내 자리였다.

카페도쿄를 읽은 것은 아마 중간고사나 기말고사를 앞두고서였을 것이다. 원래 커피를 좋아하기도 하지만 카페에 가서 몇시간동안 책을 읽거나 무엇인가 끄적대고 오는 것을 좋아하니까 이런 책에 푹 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일본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궁금한 것도 없었다. (치아키 센빠이가 사는 곳이라는 생각 정도?)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는 당장 도쿄행 비행기 티켓을 끊고 싶어졌다. 골목 골목 숨어 있는 아기자기한 카페들. 그곳은 하나하나가 카모메 식당을 닮아 있었다. 주인이 정성들여 내린 커피와 금방 구웠을 맛있는 빵들이 나란히 진열되어 있을 것 같은.

커피는 단순히 음료나 기호식품으로서의 기능만 하는 것이 아니다. 어느 순간 커피는 나에게 휴식의 다른 말이 되었다. 쉼과 함께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친구가 될 수 있다. 말을 많이 하고 싶은 날도, 전혀 한 마디도 하고 싶지 않은 날도 커피가 있어서 더 풍요로워진다. 스타벅스를 헤매고 다니는 내게 된장녀(된장)라는 별명이 붙었지만 사실, 좋은 커피 한잔에 대한 유혹을 뿌리치기가 쉽진 않다.

예전에 친구와 그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었다. 내가 마시고 싶을 때 돈 생각하지 않고 거리낌없이 커피를 사 마실 수 있을 만큼만 돈을 벌어도 좋겠다고. 아직은, 그런 여유가 오지 않았지만 그것은 어떤 여유로운 삶에 다른 말 처럼 우리에게는 들렸었다.


아, 밤이 되고 또 바람이 부니까 따뜻한 아메리카노 생각이 또 간절해진다.